“가장 좋아하는 미술, 일로 계속할 수 있어 좋아요”
발달장애인 10인, 미술 특기 살려 중견기업 디자이너로 취직 성공
26일 서울 종로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전시회를 연 발달장애 디자이너들과 디자인 회사 대표들로 구성된 전문 강사진. (왼쪽부터) 정우영 럭스탭헬스케어 대표, 오지원 디자이너, 이지은 무수히 대표, 박성민·신예진·신성환·이현주·정지용·한혜민·임푸름·이희성 디자이너, 박남훈 MGM 대표, 김신 키스맷코리아 대표. 카리스마(예명) 디자이너는 촬영에 응하지 않았다. /고운호 기자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임푸름입니다. 저는 비 오는 날을 많이 그리고 싶어요. 비가 오면 마을이 깨끗해져서 좋으니까요. 그림 그리는 거 잘하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요. 회사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환한 웃음)”
2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층에 위치한 49평 남짓 갤러리에서 ‘느리게 유영하기’라는 제목의 특별한 전시회가 개막했다. 갤러리의 새하얀 세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을 그린 주인공은 발달장애인 10명. 취미로 미술을 해온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넉 달간 사회복지시설 도움으로 전문 강사에게 디자인을 배워 다음 달부터 ‘진짜 디자이너’가 된다. 중견기업 삼구아이앤씨에 10명 모두 정식 디자이너로 취직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들이 지난 넉 달간 구슬땀을 흘려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26일부터 3일간 세상에 자신의 가능성을 뽐내게 된 예비 디자이너 10인의 입가에서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공룡을 좋아해 전시회에 낸 작품 5개 중 3개가 공룡 그림인 박성민(28)씨는 “공룡 그림을 그릴 때면 행복해진다”며 켄트로사우루스 그림을 연신 가리켰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지 묻자 옆에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미술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며 든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동차를 특히 좋아한다는 신성환(22)씨는 자동차와 집이 나온 그림을 소개하며 “이곳은 영국이에요. 핸들이 오른쪽에 있으니까요”라고 뽐내기도 했다.
이들은 성민복지관이 문화체육관광부·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등의 후원을 받아 주최한 장애인 일자리 지원 사업 ‘디자인아트-잇다’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됐다. 예술에 흥미가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예술가적 역량을 높여 기업에 취업해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업 목표였다. 사업을 추진한 남영란(43) 성민복지관 사무국장은 “이전에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미술 교육은 꾸준히 진행해왔지만 고용까지 연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중증발달장애인도 경쟁력 있는 기업에 취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뜻깊다”고 밝혔다.
이번 결실의 바탕에는 디자인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전문 디자이너 강사 4인의 헌신이 있었다. 이들은 바쁜 스케줄에도 각자 매주 한 번씩 꼬박꼬박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성민복지관을 찾아 2시간씩 기초 미술부터 디자인 생태계, 타이포그래피(글씨 디자인)까지 미술·디자인 실무 전반을 꼼꼼히 가르쳤다. 메인 강사를 맡은 박남훈(42) MGM 대표는 “비장애인 디자이너들이 산업 디자인에 길들여져 있는 반면 발달장애인 디자이너들은 속도는 느리지만 각자 개성이 뚜렷해 어떤 면에서는 정말 예술가답다”며 “비장애인과 장애인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강점을 살려 협업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들 10인은 다음 달 1일부터 디자이너로 1년 근무하고 계약 연장을 통해 더 일할 수도 있다. 삼구아이앤씨에 따르면 이들은 입사 후 신입 사원 환영 선물을 디자인하는 업무부터 맡을 예정이다. 신성환씨 어머니 한동숙(59)씨는 “(근무 기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감개무량하다”며 “좋은 경력이 될 거라 믿는다”고 했다. 이현주(40)씨 어머니 김영희(63)씨도 “딸이 늦은 나이지만 장점을 찾아 전시회도 열고 취업도 하게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기사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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